時が経つことの哀しみと節理

PVアクセスランキング にほんブログ村

ブログランキング・にほんブログ村へ

韓国にいる甥・姪たちが結婚をしない。 結婚をしたくないと、口を揃えていう。

そうは言っているが、まだペアを見つけていないだけなのかもしれない。

甥・姪たちは計6人、男性3人、女性3人だ。

年は数歳か、数ヵ月程度の差で、ほとんど同じで、幼い頃は仲良く集まって、遊ぶのを見ていればよかった。

その中で私が、一番理解できない姪が、キョンイだ。

そして私が、一番愛していた姪もキョンイだった。

そして今はお互いに挨拶はしても、あまり対話もなく、ぎこちない叔母と姪の間柄だ。

私は彼女を理解できず、キョンイも、理解されなくても構わないと思っている。

兄が結婚して7年後、キョンイが生まれた。 私の両親はもちろん、誰もが喜んだ。

私もとても可愛がっていて、いつも会いたがるほど、キョンイが好きだった。

きれいな服や人形を見ると、キョンイのためにお金を惜しまなかった。

写真を持ち歩きながら友達に、きれいだと自慢もたくさんし、キョンイも「おばさん、おばさん」と言いながらよく従った。

突然キョンイが2歳くらいの時に、意識不明になって病院に入院した時は、仕事を終えて毎日見舞いに行った。

ところが、今のキョンイは何も覚えていない。 実は私はそれが寂しかったのかもしれない。

私も幼い頃に、私が受けた愛を覚えていないから、当然のことなのに。

その後、私はニュージーランド、オーストラリアに行って、また日本に住むようになって、

とても長い間、甥・姪たちが育つ姿を、そばで見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ただ私の記憶の中に、甥・姪たちの幼い姿が長く残っていた。

様々な環境の変化もあり、思春期も経験しながら、私が知っていたキョンイとは、全く違う性格に変わっていた。

キョンイは、家族とうまくいかなかった。

一緒にいるとストレスを受けるようになり、自分のことだけを考える、利己的な人になった。

時が経ち、キョンイは30歳になった。 今は歯科技工士として、一生懸命義歯を作っている。

一人で黙々とする仕事が、性に合うという。

サービス業が、絶対に自分と合わないことを、本人も知っている。

高い服やカバンは買わず、インターネットで安いきれいな服を買う。

私も時々インターネット注文は、キョンイに頼んだりした。

するとものすごく早く注文してくれて、頼んだ後の精算も徹底している。

キョンイは決して、サービスで、買ってくれることはない。

どういう意味かと言うと、例えば、キョンイの弟のファンは、

32000ウォンの品物注文をお願いすれば2000ウォンは、

「サービスだから、叔母さん3万ウォンだけください。」と言ってくれる。

もちろん私は金額を全部払うが、ファンの心がありがたい。

ところで、そのファンが先輩の紹介で、女性に会ったことがあったという。

初めてファンに会う、その女性が開口一番「鼻の手術がしたいのですが、やってもらえるか」と尋ねたという。

初めてこの話を聞いて、私はあまりにも当惑し、先輩という人がどうしてそんな女性を、

紹介してくれるのかと怒ったことがある。

ファンは「叔母さん、興奮するなって」と言って笑った。 おそらく本人も、荒唐無稽だったのだろう。

紹介してくれた先輩も、謝罪したという。

私が気づかないうちに、私が知らないことが、当たり前に行われている時代なのかもしれない。

幸せが何かもわからず、若さをどれだけ長く維持するかが、価値の基準になった時代に、生きている。

若さを崇める時代に生きていると、そうでない感動を、もっと見つけたいのかもしれない。

にほんブログ村 小説ブログへ
にほんブログ村

にほんブログ村 小説ブログ エッセイ・随筆へ
にほんブログ村

にほんブログ村 ライフスタイルブログへ
にほんブログ村

エッセイ・随筆ランキング
エッセイ・随筆ランキング

한국에 있는 조카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데 아직 짝을 찾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조카들은 모두 6명 남자 3명 여자 3명이다.

나이는 한살이나 몇달 정도의 차이라 거의 비슷해 어린 시절엔 옹기종기 모여 노는 걸 보고 있으면 좋았다.

그 중에서 내가 제일 이해하지 못하는 조카가 여자조카 경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많이 사랑했던 조카도 경이였다.

網走水産

그리고 지금은 서로 인사는 해도 별 대화도 없고 서먹서먹한 고모와 조카 사이다.

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고 경이도 이해받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빠가 결혼하고 7년 만에 경이가 태어났다. 우리 부모님은 물론이고 모두가 기뻐했다.

나또한 엄청 귀여워하고 항상 보고 싶어할 정도로 경이를 좋아했다.

이쁜 옷이나 인형을 보면 경이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친구들에게 이쁘다고 자랑도 많이 했고 경이도 “고모 고모” 하면서 잘 따랐다.

ベネッセパレット

갑자기 경이가 2살 정도일 때 의식 불명이 되어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일을 마치고 매일 문병을 갔다.

그런데 지금 경이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사실 나는 그것이 서운했는지도 모른다.

나도 어린시절 내가 받았던 사랑을 기억하지 못하니 당연한 것인데도 말이다.

그후 나는 뉴질랜드, 호주로 갔고 또 일본에 살게 되면서

아주 오랜기간 조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곁에서 보지못했다.

그냥 나의 기억 속에 조카들의 어린 모습들이 오래 남아 있었다.

ベルーナグルメ

여러가지 환경의 변화도 있었고 사춘기도 겪으면서 내가 알던 경이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변해있었다.

경이는 가족들과 잘 지내지 못했다.

같이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되었다.

시간이 흘러 경이는 30살이 되었다. 지금은 치기공으로 열심히 이빨을 만들고 있다.

혼자서 묵묵히 하는 일이 적성에 맞다고 한다.

서비스업이 절대 자기와 맞지 않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다.

비싼 옷이나 가방은 사지 않고 인터넷으로 싼 이쁜 옷을 산다.

나도 가끔씩 인터넷 주문은 경이에게 부탁을 하곤 했다.

그러면 엄청 빠르게 주문해 주고, 부탁한 후 계산도 철저하게 해야 한다.

경이는 절대 서비스로 사주는 일이 없다.

그러나 경이 동생 환이는 32000원 물건 주문을 부탁하면

2000원은 서비스니깐 고모 3만원만 주세요 라고 말해준다.

물론 나는 금액을 다 지불하지만 환이의 마음이 고맙다.

환이가 선배 소개로 여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 만나는 환이에게 여자가 “코수술이 하고 싶은데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고 한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너무 황당해 선배라는 사람이 무슨 그런 여자를 소개해 주냐고 화를 낸 적이 있다.

환이는 “고모 흥분하지마” 라고 말하며 웃었다. 아마 본인도 황당했을 것이다.

소개해 준 선배도 사과를 했다고 한다.

내가 깨닫지 못하는 시대에 내가 모르는 일들이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행복을 잃어가며 젊음을 얼마나 오래 유지하는가가 가치의 기준이 된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젊음을 숭상하는 시대에 살다보니 그렇지 않은 감동을 더욱 찾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http://blog.with2.net/ping.php/2109143/1698375384

https://ping.blogmura.com/xmlrpc/d60rc5lwmzj9/

https://ping.fc2.com

https://blogranking.fc2.com/tb.php/1065265

http://<a href=”https://www.feedping.net”>FeedPing</a>

コメントする

メールアドレスが公開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が付いている欄は必須項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