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を大きく経て、”ビジネス通訳”として、研鑽した日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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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版エルランの見た夢と

札幌いや、道都の秋も、益々、佳境を迎えているようだ。2023年、10月も後半を迎えているのだから、当然の事だ。思えば、まだこの年の初めには、やっと渡航の門が開くか、開かないかの中、一人で、海を越えた引っ越しの渦中で、荷物の選別、搬送に、悪戦苦闘していた。その中で、ふと思い立って、書き記した雑文があったので、思うところもあって、ここに残しておこうと、思う。

最近になって私の性格が、ゆったりした変わり者だったらいいなと思う。

変わり者なら人を意識することも少ないだろうし、 のんびりすれば急がず、気楽に仕事を処理していけるのではないかと、ただ考えてみる。

もちろん私が思っていることとは、違うかもしれない。

心が、引っ越しの荷物整理に行っているから、映画を面白く見るということが、 本を読むことが楽しい活動にならない。

夢の中でも荷物をまとめている。 眠いのに荷物をどう処理すればいいのか、頭を回している。

時間が経てば笑うだろう。

今は大変だが、ちょうど1ヵ月後には笑いながら、馬鹿みたいだったと思うことを、こんなにも悩んで考えている。

一つずつやっていけばいいことを 、こんなにも気をもんでやっている自分が、かわいそうだと、また別の自分が私に言っている。

心を整理する次元で私が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を書いて机の前に貼っておくことにした。

その中で1番にあるのが「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を、10分間1000回言うことだ。

前にも心的に大変な時は、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1000回を10分間唱えるのを、一ヶ月ほどしたことがあったが、助けをたくさん受けた。

雑念もなくなる感じで、心がある程度安定し、仕事の負担も少なく感じられた。

品物を整理しながら、前にした通訳関連資料と 勉強しながら書いておいた専門用語の単語集、

数多くの名刺があった。これが私がここにいた痕跡なのだ。

一日二日すればいい通訳の仕事も、その準備は、強度によって長い時間が要求されたりもする。

特に技術関連専門分野の通訳は資料を受けて検討し、 関係分野をインターネットで検索して勉強し、業界の事情も大

体把握しなければならないため、一週間ずっと勉強していた時もあった。

だからといって私がその分野に、精通するようになったわけでもない。

その仕事が終われば他分野の通訳だから、その前のことはまた忘れてしまう。

そのように常に新しい分野に挑戦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し、それが当時は負担になった。

だが、そうしながら多くの人々にも会って、助けを受けながら成長していったのではないかと思う。

特に私が忘れられない方がいる。 韓国に来て最初の、少々、大口のガイドをしたことがあった。

その時、技術分野でかなり有名な会社の設計部の方、6人程度をガイドすることになった。

チームリーダーが、部下を連れて観光に来たのだ。 2日間の観光を終えてマッコリを飲みたいという意見があり、ホテルの近くの居酒屋に行くことになった。

色んな話をしていて業務通訳の話が出た時、部下の方がその通訳を私に依頼したらどうかと 、チームリーダーのYさんに話しながら話が進んでいった。

もちろん私は、そんな専門分野は難しいと言ったのだが 、私の日本語の実力なら可能だという話をしてくれ、私もありがたく受け入れるようになった。

それから少し、時間が経ってから ある日チームリーダーのYさんが、私に資料を急いで送ってくれた。が、実はそれこそ特殊な専門分野だった。

韓国から買い入れた機械の欠陥に対する原因分析というか、追及というか、容易な課題ではなかった。実際、クレーム関連の通訳は最も難しい仕事の一つだ。

その当時、初心者だった私には、ただクレームが問題ではなく、通訳そのものが問題だった。

弱り目にたたり目で、体の管理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に、春先になると、喉風邪まで引いた状態だった。

喉はかれて乾燥してきて、おそらく緊張したせいで、もっとひどかったのではないかと思う。

韓国の会社側に日本語が話せる方がいて、なんとか最悪の状態は免れたのだが、 私の気持ちは惨憺たるものだった。

日本から、いらした方々はチームリーダーのYさんを含めて計4人で、全員役職が高い方々だった。

それから数日後、チームリーダーのYさんから、メールをもらった。

あまりにも急な通訳日程と足りなかった資料提供で 、大変だったようで申し訳ないという内容と 、

私の日本語の実力なら、十分通訳の仕事ができるから頑張ってくださいという、激励のメールだった。

私はこのメールを受けて、感情がこみ上げて泣いたことを覚えている。
そしてその時から本当に、熱心に勉強するようになった
これが私の通訳の歴史の始まりであり、努力しようとした原動力になった。

そんな通訳の後も、Yさんは私に通訳を依頼し、私は期待に応えようと頑張った。
私の直属の上司ではなかったが、素敵な上司だと思った。
いつか会ったら、お酒を飲みながらあの時の恥ずかしかった気持ちを、笑いながら話したい。
そしてありがたかったという言葉も、本当に言いたい。

一人では生きていけないように、一人で仕事をするわけでもないだろう。

一人でするように振る舞ってはならず、そしてそのようにやりとりしながら、生きているのだ。

私は次の段階に進む、番だと思う。今までのことに対して感謝しながら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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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내성격이 느긋한 괴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괴짜면 남을 의식하는 일도 적을 것이고
느긋하면 서두르지도 않아 편안하게 일을 처리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그냥 생각해 본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이 짐정리에 가 있다 보니 영화를 재미있게 본다는 것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즐거운 활동이 되지 않는다.
꿈속에서도 짐을 정리하고 있다.
잠이 오는데도 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로 머리를 굴리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웃을 일일 것이다.
지금은 큰일이지만 바로 한달 뒤에는 웃으면서 바보 같았다고 생각할 일들을 이리도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냥 하나씩 하나씩 해 나가면 될 일을
이리도 마음을 졸이면서 하고 있는 나자신이 안스럽다고 또다른 내가 나에게 말하고 있다.
마음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적어 책상 앞에 붙여 두기로 했다.
그 일들 중에 1번에 있는 것이 “감사합니다”를 10분 동안 1000번 말하는 것이다.
전에도 심적으로 힘들 때 이 감사합니다 1000번을 10분 동안 하는 걸
한달 정도 한적이 있었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잡념도 없어지는 느낌이고, 마음이 어느정도 안정이 되고, 일의 부담도 적게 느껴졌다.

물건을 정리하면서 전에 했던 통역 관련 자료와
공부하면서 적어 두었던 전문용어 단어집, 수많은 명함들이 있었다.
이러한 것이 내가 여기에 있었던 흔적들인 것이다.
하루 이틀 하면 되는 통역 일도 그 준비는 강도에 따라 긴 시간이 요구되기도 한다.
특히 기술 관련 전문 분야 통역은 자료를 받아 검토하고
관계 분야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공부하고 업계 사정도 대충은 파악해야 하다 보니
일주일 내도록 공부하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 분야에 정통하게 된 것도 아니다.
그 일이 끝나면 다른 분야의 통역이니 그전의 것은 또 잊어버린다.
그렇게 항상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야 했고, 그것이 그 당시에는 부담스럽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많은 사람들도 만나게 되고 도움을 받으면서 성장해 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내가 잊지 못하는 분이 있다. 한국에 와서 처음에 가이드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기술 분야로 꽤 유명한 회사의 설계부 6인 정도를 가이드 하게 되었다.
팀리더가 부하직원들을 데리고 관광을 하러 온 것이었다.
이틀 동안의 관광을 끝내고 막걸리를 먹고 싶다는 의견이 있어 호텔 가까운 곳 이자카야에 가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통역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 부하 직원이 그 통역을 나한테 의뢰하면 어떻게냐고
팀리더인 야마자키씨에게 말을 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물론 나는 그런 전문 분야는 어렵다고 하였지만
나의 일본어 실력이면 가능하다는 말들을 했고 나도 감사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지난 후
어느날 팀리더인 야마자키씨가 나에게 자료를 급하게 보내주었는데
사실 그야말로 특수한 전문 분야였다.
한국에서 사들인 기계 결함에 대한 원인 분석이랄까 추궁이랄까 쉬운 과제는 아니었다.
사실 크레임 관련의 통역은 제일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이다.
그당시 초보자인 나에게는 그냥 크레임이 문제가 아니고 통역 그 자체가 문제였다.
설상가상으로 몸관리를 한다고 했는데 초봄만 되면 걸리는 목감기까지 걸린 상태였다.
목은 잠기고 건조해 오고 아마도 긴장한 탓에 더 심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 회사 측에 일본어를 하시는 분이 있어 그럭저럭 최악의 상태는 면할 수 있었지만
나의 기분은 참담했다.
일본에서 오신 분들은 팀리더인 야마자키상을 포함해 총4명으로 모두 직급이 높은 분들이었다.
그리고나서 몇일 후 팀리더인 야마자키씨에게서 메일을 받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통역 일정과 부족했던 자료제공으로
힘들게 한 거 같아 미안하다는 내용과
나의 일본어 실력이면 충분히 통역일을 할 수 있으니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메일이었다.
나는 이 메일을 받고 감정이 복받쳐 올라 엉엉 울었던 걸 기억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정말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이것이 나의 통역 역사의 시작이었고, 노력하려고 했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 통역 후에도 야마자키씨는 나에게 통역을 의뢰했고 나는 기대에 부응하려고 열심히 했다.
나의 직속 상사는 아니었지만 멋진 상사라 생각했다.
언젠가 만나게 되면 술을 마시면서 그때의 부끄러웠던 마음을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고마웠다는 말도 정말 하고 싶다.

혼자서 살아갈 수 없듯 혼자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혼자 하는 것처럼 굴어서는 안되고, 그리고 그렇게 주고받고 엮이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차례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의 것들에 대해 감사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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