オークランドで、束の間、出会って別れた、忘れえぬ”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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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憶の中央には「人」がいる場合が多いようだ。

特に重要だと思われる記憶の中にはなおさらだ。

人と人を結ぶ、縁のためだろう。

私は自分の状況のために、私に近づいた縁を振り払ったり逃したことがある。

残念でもあるし、懐かしくもある。

私がフェイに会ったのは、ANZ銀行の中だった。 私は銀行のATMの前でお金を下ろそうとしていて、

フェイは私の後ろの少し離れたところで、順番を待っていた。

普通、ニュージーランドではトイレでも本屋でもどこでも

列に並んで待っているところでは、常に距離を置いて待っている。

前の人が急がないようにするための配慮だ。

待っている人たちも急がず、ゆったりとしている様子だ。

私はそんな姿に安心感を感じた。なぜなら韓国は”早く早く”社会だ。

今よりその当時、韓国はもっと。せわしく忙しかった。

ニュージーランドに到着して、1ヶ月ほど過ごした時だった。

ATMでお金を下ろそうと何度も試みたが、できなかった。

いつも使っていたATMだったので、戸惑った。

途方に暮れている私に後ろに立っていたフェイが近づいてきて尋ね、

お金を下ろすことができないと言うと、彼女は私を銀行員のところに連れて行った。

ATMで探せる金額は決まっていて、 それより多くのお金が必要なら、窓口に行って

下ろさなければならない」と話した。

その日は下宿代を払うために、普段より多くのお金を引き出そうとしていたのだ。

私はとてもありがたかったし、フェイに、コーヒーを奢らせてもらいたいと言った。

彼女は、フランクに受け入れてくれた。 オークランド大学に留学中で、ブルネイ出身だった。

顔は小さくて足は長くてすらりとしていた。 中国系ではないかと思う。

最初に彼女を見た時は、香港やシンガポール出身ではないかと思っていた。

賢く見えたし、親切だった。実は最初は、ブルネイという国についてよく知らなかった。

「nevermind」とフェイは言ったが、すまない気持ちになった。

彼女とはたまにお茶も飲んだり、食事も一緒にするようになった。

そうしながら私たちは、友達になっていった。

彼女は大学の友達も連れてきて、私に英語で話す機会もわざわざ作ってくれた。

私がニュージーランドを離れる時、残念ながら彼女と連絡が取れなかった。

今は、携帯電話があるが、その当時は家の電話を使っていた時代。

時々私は、フェイのことを考えたりする。 いい友達を失った気がした。

フェイは留学後、ブルネイに戻ったか、あるいはイギリスで働いてそこに住んでいるかもしれない。

韓国に行くことになったら連絡すると彼女は言ったし、私もそうして欲しかった。

昔、ピ·チョンドゥクの「縁」という随筆を、教科書で学んだことがある。

長く記憶された随筆であり、なぜか余韻が残ったことを覚えている。

ランゲージスクールで、私がかわいがっていたクラスメートがいた。

インドネシア出身のブディだった。 高校を卒業してニュージーランドに留学してきた。

ランゲージコースを終えて大学に進学する予定だった。

「生きていくのに、あえて歴史は学ぶ必要がないと思う」という、荒唐無稽な話をしたりもした。

しかし、私はブディを可愛がっていたし、カフェに行く時はよく彼を連れて行った。

分別のないことや、利己的なことを時々言ったりもするが、許された。

大人になっていく過程だと思った。私にもブディのように、物心なく物言いをした時期があった。

しかし、いつかは彼も気づく日が来るだろうし、私よりもっと早く、

その日が来たりするかも知れないとも、思った。

そして私は、大人だと思う今でさえ、多くの間違いと失言を、何気なくしながら生きている。

記憶をたどってみると、大切な人たちがたくさん思い浮かぶ。

 忘れたと思った人たち、ピ·チョンドゥクの「縁」のように会うべき縁と、会わなければよかった縁もある。

そして会うべき縁の時期があることも知っている。

しかし、重要なこと縁は大切に守り、記憶しなければならず、逃さないことを願う気持ち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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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중앙에는 “사람 ”이 있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기억 속에는 더욱 그러하다.

사람과 사람을 엮는 인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나의 상황들 때문에 나에게 다가온 인연들을 뿌리치거나 놓친 적도 있다.

아쉽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다.

내가 페이를 만난 건 ANZ 은행 안에서 였다.

나는 은행 안 ATM 앞에서 돈을 찾으려고 하고 있었고, 페이는 내 뒤쪽 좀 떨어진 곳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뉴질랜드에서는 화장실이든, 서점이든 어디서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에선 항상 거리를 두고 기다린다.

앞사람이 서두르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이다.

기다리는 사람들도 서두르지 않고 느긋한 모습들이다.

나는 그런 모습에서 안심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한국은 “빨리 빨리” 사회다.

지금보다 그 당시 한국은 더욱 서두르고 바빴다.

뉴질랜드에 도착해 1개월정도 지냈던 때였다.

ATM에서 돈을 찾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항상 사용했던 ATM 이였기에 당황스러웠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에게 뒤에 서있던 페이가 다가와 물었고,

돈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하자, 그녀가 나를 은행 직원에게로 데리고 갔다.

ATM에서 찾을 수 있는 금액은 정해져 있었고,

그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면 창구에 가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날은 하숙비를 내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돈을 인출하려고 했던 것이다.

난 너무 고마웠고, 페이에게 커피를 사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흥케이 받아주었다.

오클랜드 대학에 유학 중이고 브루나이 출신이었다.

얼굴은 작고 다리는 길고 늘씬했다. 중국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에 그녀를 봤을 땐 홍콩이나 싱가포르 출신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영리해 보였으며, 친절했다.

사실 처음에 나는 브루나이 라는 나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never mind” 라고 페이는 말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와는 가끔씩 차도 마시고, 식사도 같이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친구가 되어 갔다.

그녀는 대학 친구들도 데리고 나와, 나에게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도 일부러 만들어 주었다.

내가 뉴질랜드를 떠날 때 아쉽게도 그녀와 연락을 하지 못했다.

지금이야 핸드폰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집전화를 사용하던 시대.

가끔씩 나는 페이를 생각하곤 한다. 좋은 친구를 잃은 느낌이 들었다.

페이는 유학 후 브루나이로 돌아갔거나, 아님 영국에서 직장을 다니며 그곳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 가게 되면 연락하겠다고 그녀는 말했고 나 역시 그걸 원했다.

옛날에 피천득의 “인연 ”이라는 수필을 교과서에서 배운 적이 있다.

오래 기억된 수필이었고, 왠지 여운이 남았던 걸 기억한다.

랭귀지 스쿨에서 내가 귀여워했던 클래스메이트가 있었다.

인도네시아 출신인 부디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뉴질랜드로 유학을 왔다.

랭귀지 코스를 마치고 대학을 진학할 예정이었다.

“살아가는데 굳이 역사는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는 황당한 말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나는 부디를 귀여워했고, 카페에 갈 땐 자주 그를 데리고 갔다.

철없는 소리와 이기적인 말을 가끔 하기도 하지만 용서가 되었다.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부디처럼 철없게 말한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언젠간 그도 깨닫는 날이 올 것이고, 나보다 더 빨리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지금에조차 많은 실수와 실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기억을 더듬다 보니 소중한 사람들이 많이 생각난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사람들.

피천득의 “인연” 처럼 만나야 할 인연과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인연도 있다.

그리고 만나야 할 인연의 시기가 있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인연은 소중히 지키고 기억해야 하며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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