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耳が遠い人” の語学学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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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版エルランの見た夢と

私自身は、自分では気づかなかったが、耳があまり良くないようだ。

周りから、何度呼んでも気づいてくれないという、文句も結構聞いた。実は、本当に聞こえていなかったのだ。

このためか、語学を勉強するのに多くの困難があった。耳が開かないという言葉は、私自身が勝手に、使っていた言葉だった。

ニュージーランドのランゲージスクールでテストをすると、リスニングは、いつも私を悩ませた。テレビでは画面に気を取られて集中できなかったのか、私のリスニングは改善されなかった。ニュージーランドに、ウェアハウスという倉庫型スーパーがあった。そこで安いラジオを買ってきて、聞き取りの練習を始めた。耳が開かないので、ボリュームを大きくして聞いた。

ある日、一緒に下宿していたミホが、何をそのように聞いているのかと尋ねた。隣の部屋だから音が聞こえたはずだ。 ごめんなさいと言うと親切に「NO problem」と言ってくれた。ところで、ニュージーランドの家は部屋の中の音が外に、あまり漏れない。堅固に建てられている。 それが、せめてもの救いだった。

もちろん机に座って勉強する時は、イヤホンを使った。そのようにリスニング練習をしながら、少しずつラジオの言葉が理解され始め、テストの結果も良くなった。私の英語の先生だったクリーヴも、私の進歩を気に入ってくれた。

私がリスニングについての悩みを、クリーブに何度も話したことがある。

お金を払って遠い国まで来たのに、何か結果を残さ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焦りがあった。

他の韓国人留学生のほとんどが、この焦りを抱いていた。

ところで、何年か前まだ、韓国にいた時、通訳で日本に来た。

英語を勉強したと言うのに、日本語通訳の仕事をしていたというのも、”人生は、どうなるか分からないものだ”

という言葉があるが、皮肉なことに、私にも当てはまる言葉だ。

幕張メッセであった博覧会通訳の仕事で来て、仕事を終えて、成田空港に行った。

コリアンエアラインの窓口に行ったら、日本人職員が仕事をしていた。あまりにも流ちょうな韓国語を使っていた。

ハングルを勉強するために、ソウルに留学したという。

胸がジーンとする、感じがした。

こんなに若い人たちが、ハングルを勉強してくれるということが、私には、ありがたく感じられた。

複雑な気持ちもあるが、それでも、いいことだと思う。

言語を留学という道で習得することもできるが、自分の人生を豊かにする手段として、日々の生活の中で習得することも、生きていく知恵ではないかと考えてみる。

「これからはどの国の言葉を勉強してみようか?」と自分に、笑いながら聞く日が来ることを、願う気持ち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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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신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귀가 어두운 편이다.

주위로 부터 몇번을 불러도 모르고 있다고 한다. 사실 들리지 않았다.

이것 때문인지 어학을 공부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귀가 트이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나자신에게 하고 있는 말이었다.

NZ 랭귀지 스쿨에서 테스트를 하면 리스닝은 항상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TV로는 화면에 정신이 팔려 집중이 되지 않았는지 나의 리스닝은 개선되지 않았다.

뉴질랜드에 웨어 하우스라는 창고형 슈퍼가 있었다.

그곳에서 싼 라디오를 사가지고 와서 듣기 연습을 시작했다.

귀가 트이지 않으니 볼륨을 크게 해 들었다.

어느날 같이 하숙하던 미호가 무엇을 그렇게 듣고 있느냐고 물었다.

옆방이니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미안하다고 하자 친절하게 “NO problem”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런데 뉴질랜드 집은 방안의 소리가 밖으로 잘 새어나가지 않는다.

견고하게 지어져있다. 그래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물론 책상에 앉아 공부할 때는 이어폰을 사용했다.

그렇게 리스닝 연습을 하면서 조금씩 라디오의 말들이 이해되기 시작했고 테스트의 결과도 좋아졌다.

나의 영어 선생이었던 클리브도 나의 진보를 좋아해 주었다.

내가 리스닝에 대한 고민을 클리브에게 여러번 이야기 한적이 있었다.

돈을 드려 이 먼나라 까지 왔는데 뭔가 결과를 남겨야 한다는 초조함이 있었다.

다른 한국 유학생들 거의 다가 이 초조감을 안고 있었다.

몇년 전에 통역일로 일본에 왔다.

영어를 공부했다면서 일본어 통역일을 했다는 것이 “인생은 알수 없는 것이다”라는 말은

아이러니 하게도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마쿠하리 메세에서 있었던 박람회 통역일로 왔다가 일을 마치고 공항에 갔다.

코리안 에어 라인 창구에 갔더니 일본인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beautiful한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한글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에서 유학을 했다고 한다.

가슴이 뭉클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한글을 공부해 준다는게 나에게 고맙게 느껴졌다.

복잡한 마음들도 있지만 그래도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언어를 유학이라는 길로 습득할 수도 있지만

자신을 윤택하게 해 줄수 있는 수단으로써 습득하는 것도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 이나이가 되어 비로써 이 한 구절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는 어느나라 말을 공부해 볼까?”라고 자신에게 웃으면서 물을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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